" 삶의 많은 부분들은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상실을 중심으로 직조된다고 생각한다. 삶과 연결된 고통과 상실을 다루는 연민의 관계들이 만들어낸 형상이 아닐까. "​​​​​​​

강동주, <기대는 빛 (2017) #1>, 2022, 종이에 먹지, 흑연가루, 검 아라빅, 55.5x55.5cm

<기대는 빛> 연작은 빛이 거쳤던 자국을 본뜨는 데 중점을 둔 작품이다. 창문을 지나는 빛과 창틀에 켜켜이 쌓인 먼지는 먹지를 누르는 신체의 압력을 통해 그 모습을 드러낸다. 창 표면에 압력을 가하면 압력차에 의해 유격이 발생하는데, 이때 먹지의 안료가 표면의 유격에 맞게 떨어지며 빛의 형상이 남는다. 빛은 작가가 오랜 시간 다루어온 주제로, 어둠을 반증하는 물질이자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매개체이다.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시간은 창문의 표면에 켜켜이 쌓인 빛과 먼지의 지형으로 드러난다. 강동주는 작품에 자신이 존재하는 공간의 흔적을 담으며 생활의 터와 연대한다.

― 작업의 주요 소재가 구체적인 사물보다는 시간, 공간, 빛과 어둠 등과 같이 주로 관념적인 것들입니다. 그런데 일상에서 지나치기 쉬운 구체적이고, 작은 '먼지'를 매체로 사용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?
<기대는 빛>에서 지칭한 ‘먼지’라는 표현은, 먼지라는 물질 자체보다는 대상의 표면적 성질을 은유한 표현입니다. 대학 시절 조형예술학과에서 회화 뿐만 아니라 조각, 캐스팅 등에 관련된 수업도 수강했습니다. 어떤 물체를 본뜨면, 그 물체를 제거한 후에 빈 공간이 남기에 한 물체가 존재했던 곳이 빈 공간으로 남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. 그리하여 어떤 대상보다, 그 대상을 드러내는 상황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. 이 맥락에서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는 잠재된 상태를 보이게 하는 힘을 지닌 매개체를 발견하게 되었고, 그러한 대상을 작품에서 다루게 되었습니다.

― 주로 공간에 천착하여 작업을 한다고 하셨는데, 이 외에도 특정 사물이나 사람에게 영향을 받아 작업한 경험이 있으실까요?
제가 말하는 ‘공간’은 독립된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, 제가 어딘가에 기대고 있다고 느낄 수 있는 상호작용을 하는 공간입니다. 이러한 맥락에서 생각을 해보면, 제 ‘공간’ 은 이미 많은 사람과 사물이 포함되어 있습니다. <기대는 빛 연작>을 진행하며 팬데믹을 맞이했고, 가족과 친구들은 저들이 어떠한 장소를 갔을 때 촬영한 사진을 저에게 전송하곤 했습니다. 그래서 이 때 사진의 표면을 프레스기로 종이에 전사하는 작업을 하기도 했습니다.​​​​​​​

강동주, <기대는 빛 (2022) #5>, 2022, 종이에 먹지, 흑연가루, 179x119.5cm

― 몇몇 사진 작업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작품이 무채색을 띠는데, 특별한 의도가 있나요?
저는 색에 대한 관심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. 하지만 빛의 영역에서 흑백으로 드러나는 이미지를 보는 것은, 흑백 이미지를 볼 때 그 이미지만큼 비어있는 자리를 살펴보고 있기 때문입니다. 이러한 맥락에서 이미지를 다루다 보니 자연스럽게 흑백으로 결과물이 나오게 된 것 같습니다. 그 뿐만 아니라, 검은색이라는 색상 자체가 모든 빛을 흡수해 어둡게 보인다는 조형적 측면에서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.

― 작품 제작 단계 중 가장 의미를 두시거나 집중하게 되는 순간이 언제인지 궁금합니다. 그 과정 속에서 어떤 어려움과 즐거움을 경험하시나요?
저는 개인적으로 통제욕구가 굉장히 강한 사람입니다. 하지만 제가 작업을 구상하고 전개해나가는 과정을 생각해보면, 그 과정은 보통 원하는대로 진행되지 못합니다. 저의 작업 과정은 유기적으로 이루어지기에 거의 제 기대를 저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. 하지만 전시가 예정되어 있다면 그 과정들을 담대하게 견뎌야하지만 항상 쉽지 않습니다. 마감기한이 있고, 그래서 마음도 초조하며 의도와 다르게 종종 작품이 진행될 때 그 사실을 숨기고 타협해야 하나 라는 고민을 하기도 합니다. 그래도 그 시간을 버텨내면 과정에서 잠재되었던 것이 어느 순간 작업의 형태로 완성되는 듯합니다. 그렇기에 작업과정이 의도하지 않은 우연히 발생한 순간들이 어떻게 작업에 반영될 수 있는지에 대해 집중합니다. 통제 불가한 환경과 대치할 때 가장 괴롭지만, 돌이켜보면 작업에서 가장 의미있는 순간이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. 

강동주 작업실 - 요즘 작업할 때 주로 사용하는 도구와 재료들

― 문지르거나 찍어내는 작업을 주로 하시는데, 이 과정에서 작가님께 ‘접촉’이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궁금합니다.
전시 기획 내용을 보며, 개인이 느끼는 존재감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.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저 개인의 존재감을 긍정적으로 느껴본 경험이 많이 없는 사람이라서, 그것에 대한 반발로 신체적 공간적 활동을 하는 편이며, 그 과정이 작업으로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. 제가 소중하
게 느끼는 경험들은 보통 건축적 환경과 연관된 경우가 많고, 그런 건축적 환경과 연관된 경험들은 물질과 접촉한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. 그 과정을 생각해보면, 무엇과 접촉하는 상황에서는 온전히 그 상황에 집중하는 게 가능하다 생각합니다. 그리고, 그 접촉을 이용해서 물리적인 세계에 자극을 가하며 세계와 어울리게 행동할 때, 그런 큰 세계 안에 작은 개인으로 가지고 있는 많은 불안감을 떨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. 

― 작업할 때 특별히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있으신가요? 빛이 들어오는 시간대나 공간의 변화와 같은 요소를 깊이 염두에 두시는지 궁금합니다. 
작업할 때 특별하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사실 없습니다. 그저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눈에 보이는 변화보다는, 무엇을 관찰할 때 모든 것은 언제나 변화한다는 잠재적인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.

― 전시명처럼,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'돌에 갇힌 별'은 무엇인가요?
사실 제가 짧게 무언가를 정의하는 것을 어려워해 많이 고민을 했습니다. 저는 저희가 살고 있는 삶의 많은 부분들은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상실을 중심으로 직조된다고 생각합니다. 그래서, 저에게 돌에 갇힌 별의 의미란 삶과 연결된 어떠한 고통과 상실을 다루는 연민의 관계들이 만들어낸 형상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. 그러한 부분에서 작업을 계속 이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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